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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정부의 정책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예산은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문제, 그리고 문제 해결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상태, 그 상태까지 가는데 필요한 정책수단과 전략을 모두 보여준다. 그러므로 ‘좋은’ 예산은 단기적으로는 현실의 문제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사회 개혁의 도구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보건 예산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 및 의료이용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취약한 지역과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고, 모든 사회구성원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높은 질의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어느 해 할 것 없이 예산은 중요하지만 2023년 예산은 특히 그 의미가 크다. 2022년은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통하여 국가권력과 지방권력이 모두 교체된 해이고 2023년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예산을 통해서 공개하는 첫 번째 해이다. 이미 지난 8월 30일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정부 예산안과 함께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였다. 예산안의 주요 내용은 건전재정기조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역량의 활용과 공공부문 효율화’를 기반으로 하였다.
이런 기조는 보건의료 예산안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내년 보건의료분야 예산안은 4조 5,157억원이었는데 이는 올해 본 예산보다 7.9% 줄어든 것이다. 감염병 대응과 관련된 의료기관의 손실보상 예산이 4,165억원 감소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22년 3월 코로나19 전담병상 수의 비율은 공공병원이 41.8%, 민간병원이 58.2%였다. 우리나라 전체 병상의 9.7%에 불과한 공공병원 병상이 코로나19 전담병상의 4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기관당 확보된 평균 코로나19 전담병상 수는 공공병원이 107.9개, 민간병원은 55.2개였다. 2021년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체 감염병 전담병원의 90%가 공공병원이었지만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하여 민간병원의 참여가 늘어났다. 그러나 올해 3월 전체 공공병원의 34.7%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한 반면 민간병원 중 감염병 전담병원의 비율은 2.6%에 불과하였다. 이 중 지방의료원 및 적십자병원으로 대별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총 41개 병원 중 40개 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였다.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조직의 체계와 운영방식은 전면적으로 변화되었고 필수의료제공 및 급성기 병원으로서의 기존 역할은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공공병원들의 환자 수와 의료수익은 급감했다. 지방의료원의 경우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추계된 의료손실 규모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의료손실 누계액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방의료원의 2022년 월별 병상이용률 증감율을 적용했을 때 2019년 병상이용률을 회복하는 데에는 4.3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손실보상금은 적어도 향후 4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지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년의 손실보상금은 올해보다 최소 80%는 넘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본 예산의 62.5%만 감염병 대응 손실보상금으로 책정했다. 그 피해는 주로 공공병원에 집중되고 공공병원의 회복기간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뻔하다. 공공보건의료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고 필수의료 공급과 의료안전망 역할은 미흡할 것이다. 필수의료와 건강의 지역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고 공공의료는 사실상 더욱 위축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종감염병의 주기적 창궐과 관련하여 공공병원 양적 확충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관련 예산은 전혀 편성되지 않았고 지방의료원 등 육성,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게다가 의료·분만취약지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심지어 권역감염병 전문병원 구축 예산까지도 29.7% 삭감되었다.
반면 ‘비대면 진료기술개발 예산’, ‘가상환자·가상병원 기반 의료기술 개발사업’, ‘의료기관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활용기술 연구개발 및 실증’, ‘스마트 임상시험 신기술 개발 연구’, ‘미래성장 고부가가치 백신 개발’ 등 소위 스마트 헬스, 디지털 헬스 영역의 사업에는 424억원이 배정되었고 이 중 334억원은 올해 예산에는 없었던 신설 예산이었다. 또한 시장확보와 경제안보에 긴요한 7대 핵심기술의 하나로 선정한 첨단 바이오 연구에는 106억원을 증액하였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코로나19 이후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위하여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서 디지털 뉴딜의 핵심 영역을 보건의료로 설정하고 ‘스마트 의료 인프라’를 10대 대표과제로 선정하였던 그 정책적 맥락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 고령화, 질병구조의 변화, 지역 간 건강 및 필수의료 불평등, 지역 위축과 이로 인한 의료취약지의 지속적 증가, 보건의료인력 및 직접적 정책수단의 부족 등과 같이 정부가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경제 권력과 시장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과 의료이용을 보장해야 ‘좋은’ 예산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예산의 확보문제는 결국은 권력의 문제이다. 국가가 사회구성원들의 건강 및 의료이용에 대한 책무성을 방기하고 경제 권력이 시민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보건의료를 자본축적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때 이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주체가 ‘좋은’ 예산, ‘좋은’ 보건의료예산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건강과 삶의 주체인 시민사회 공동체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사회 권력으로 조직화되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때 우리가 낸 세금이 ‘좋은’ 보건의료예산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산은, 그리고 보건의료예산은 시민사회의 참여에 기반하여 논의되고 수립되고 집행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 해당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칼럼으로 서울시 및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