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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려장, 분절된 재정을 통합하고 시군구가 노인돌봄을 책임지도록 하면 해결 가능 (35호)



현대판 고려장, 분절된 재정을 통합하고 시군구가 노인돌봄을 책임지도록 하면 해결 가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 윤 교수






"죽으러 가는 기분이야.
동네 사람들 요양병원 갔다가 돌아온 사람 아무도 없어."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한 날 아침 체념한 듯 말씀 하신다. 가족들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된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의 한 장면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노인도, 배우자와 부모를 보내는 가족도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건강상태가 나빠지는 노인을 집에서 계속 돌보기에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시간은 너무 짧고, 의사와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건강을 돌봐주지도 않고, 때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살기에는 주거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중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노인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10명 중 5명이 입원해 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 약 30만 명이 어쩔 수 없이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판 고려장은 정부가 노인돌봄에 더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없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일까?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노인돌봄에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80세 이상 노인 인구 1인당 노인돌봄 재정지출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이다. 미국이나 유럽만큼 돈을 쓰면서도 이들 국가들만큼 노인들이 돌봄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노인돌봄 재정이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재정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는 건강기능상태가 나쁜 1~2등급 노인에 한해서 요양원에 입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요양원과 비슷한 요양병원에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해도 아무런 제약 없이 입원할 수 있다.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은 노인들이 요양병원 입원이 늘어나면서 요양원의 입원 문턱도 덩달아 낮아졌다. 그 결과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 4명 중 3명은 의학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 노인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에게 지출되는 건강보험 진료비는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에 대한 재가급여의 약 2.5,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보험 급여비는 1.8배에 달한다.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들을 돌봄 비용을 2배 더 들여서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더 많은 비용을 쓴다고 해서 집에서 사는 노인에 비해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원래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았던 노인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하면 2년 내에 4명 중 1명은 사망하고, 다른 1명은 건강상태가 크게 나빠진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의 약 절반이 사망하거나 상태가 크게 악화된 반면 집에서 생활하던 노인의 중 사망하거나 상태가 나빠진 노인은 10명 중 1.5명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으로 이원화된 노인돌봄 재정과 집에서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가 맞물려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은 노인들까지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대거 입원하는 체계가 만들어 졌다. 그로 인해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들을 요양원과 요양병원으로 등 떠밀어 보내면서 재가급여에 비해 2배가 넘는 비용을 입원비로 쓰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현재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쓰고 있는 돈을 요양보호사가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의사와 간호사의 왕진, 노인들이 살집을 마련해주거나 고쳐주는데 사용했다면 노인과 가족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졌을 것이다. ‘20년 기준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에 대한 재정지출은 약 10조원으로 이 중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아 집에서 살 수 있는 노인의 입원비는 약 4~7조원으로 추정된다. 장기요양등급 1~2 등급만 입원할 경우에는 7조원, 3등급까지 입원할 경우는 4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위한 재가급여에 사용하면 현재 장기요양보험 재가급여를 거의 2배 가량 늘릴 수 있다.


둘째, 현대판 고려장이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노인돌봄의 주체가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은 요양보호사 방문으로 일상생활을 상당부분 해결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집에서 살기는 어렵다. 살 곳이 마땅치 않은 노인에게는 집이 필요하고, 쪽방처럼 집에서 식사준비를 할 수 없는 경우 도시락 배달이 필요하고, 병원에 가야 할 때는 장애인 콜택시 같은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이는 시군구가 책임지는 노인돌봄사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으면 시군구 노인돌봄사업 대상자가 될 수 없고, 반대로 시군구 노인돌봄사업 대상자가 되면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을 수 없다. 장기요양보험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모두 반쪽짜리 돌봄서비스를 각각 다른 노인에게 제공하고 있으니 반쪽짜리 서비스만으로 집에서 살 수 없는 노인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약하면 현대판 고려장은 애초에 정부가 노인돌봄체계를 잘못 설계한 탓이다. 지금 노인돌봄에 쓰는 돈만이라도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현대판 고려장과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먼저 노인돌봄재정을 장기요양보험 중심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 1~2등급을 받아야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재가서비스를 대폭 확대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노인돌봄의 주체를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로 일원화해 노인이 온전한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군구가 노인돌봄사업의 주거, 식사, 이동 서비스와 장기요양보험의 재가서비스를 함께 아울으면 노인이 집에서 사는데 필요한 온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장기요양보험이 재정을 운영하는 권한과 책임을 계속 갖더라도 시군구가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노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시군구별로 노인인구 수와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으로 고려하여 지출할 수 있는 재정의 총액을 설정해 관리하면 낭비적인 지출을 막을 수 있다.










⁋ 해당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칼럼으로 서울시 및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